‘제재면제갱신’과 ‘인증’…어려운 핵협정 용어들

OFAC Building요즈음 이란 핵협정(JCPOA) 기사를 읽다 보면 정신을 차리기 어렵습니다. 90일 주기의 인증거부, 120일 주기의 제재면제, 스냅백, 윈드다운 등등…

각종 생소한 용어에 날짜까지 얽혀있어 신문을 정독해도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제재면제는 왜 갱신하는지? 인증거부는 핵협정 파기인지? 인증을 거부하지만 갱신은 할 수 있는건지? 

하지만 이런 제도 또는 장치들은 무작정 생긴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나름의 목적으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모두 협상 당사국들의 치열한 싸움과 양보, 타협 끝에 나온 고도의 외교 산물들입니다. 따라서 핵협상 당시 상황을 따라가다 보면 이해가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간단하게 당시 상황을 살펴보며 차례대로 설명하겠습니다.

핵협상 당시 이란이 미국에게 요구한 핵심사항은 ‘모든 제재’를 해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떤 반대급부를 제시하던, 제재(Sanction) 해제 없는 핵협상은 이란에게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란은 미국의 포괄적 이란제재법(CISADA 2010), 국방수권법(NDA 2012), EU의 이란산 원유 재보험 거부등으로 아주 힘겨운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재대상이 미국기업뿐만 아니라 이란에너지 부문에 투자한 미국外 해외기업에게까지 미치고, 한국등 동아시아 국가에 이란산 원유수입 감축을 요구하자(Executive order 13622), 원유에 의존하던 이란경제는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따라서 이란은 핵프로그램 동결 대가로 이란에 대한 ‘모든’ 제재 해제를 요구합니다. 이는 핵관련 뿐만 아니라 인권, 탄도미사일, 테러지원 등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모든 제재를 해제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1979년부터 시작한 이란제재법안 자체가 워낙 방대하고 당시 공화당이 장악한 美의회의 반대가 극심하여 진통끝에 다음과 같이 오바마 행정부와 합의하였습니다.

첫째, 핵관련 제재만 해제할 것 – 이때 이란의 탄도 미사일 실험을 핵협정에 포함시킬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는데, 결국 “핵폭탄을 운반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개발을 중단한다”는 애매한 별도 합의(유엔 안보리 결의 2231)로 얼버무려 두고두고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란은 그 후, 탄도미사일 실험을 수 차례 진행하며, 자국에 핵무기가 없기 때문에 탄도미사일 실험은 ‘핵폭탄을 운반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개발’이 아니라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협상 당시 미국도 이런 해석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협상 타결을 위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제재해제는 미국외 기업 또는 개인에게만 유효 함 – 즉 제재해제는 미국’外’ 기업 및 개인에게만 유효하며 미국민 및 미국기업에 대한 제재, 이른바 프라이머리 생션(Primary Sanction)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셋째, 제재해제 방식은 미국 대통령이 제재면제권(Sanction Waiver)을 주기적으로 행사하여 해제 함. – 이란은 제재법안의 폐기, 즉 미 의회가 법안폐기를 통과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미 의회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요구였습니다.

따라서 오바마는 의회설득을 포기하고 이란과 거래하는 미국외 기업들에게 제재면제권을 부여하겠다는 타협안으로 이란의 동의를 얻습니다. 보통 제재법안은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을 부여하여, 행정부 단독으로 제재면제 또는 유예를 결정할 수 있기 대문입니다.

당시에는 힐러리 클린턴이 유력한 대선후보였기 때문에 이런 합의가 가능했습니다. 차기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이 핵협정을 계속 준수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오바마 대통령은 핵협정을 유엔안보리 결의안으로 승인시켜 국제법적 지위까지 부여했습니다. 따라서 핵협정의 지위는 당시 나름 탄탄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2016년 1월16일 이란제재가 해제된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에너지 부문에 대한 제재면제는 120일, 기타 부문에 대한 제재면제는 180일마다 갱신하여 유럽기업들의 이란투자를 허용합니다. 이때부터 프랑스 토탈을 포함한 유럽의 주요 원유메이저들이 이란투자를 타진하기 시작합니다.

‘120일 주기의 제재면제 갱신’은 에너지 산업에 대한 의존이 막대한 이란에게는 핵협정의 핵심사항으로써의 의미를 갖습니다.

핵협정에서 ‘제재해제’는 이미 존재하는 제재법안의 효력을 제재면제권 갱신으로 일정기간 유예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트럼프가 5월12일 제재면제권을 갱신하지 않으면 이란에너지 산업에 투자하는 유럽기업들은 바로 이란제재법의 구성요건에 해당하게 되고 이들은 이란투자를 포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갱신을 하지 않으면 이란과 거래한 기업들은 바로 거액의 벌금을 물게 될까요? 당연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관리국(OFAC)이 2016년 12월 공시한 가이드 라인에 따르면 이란제재가 다시 부활하는 이른바 ‘스냅백(Snapback)’의 경우에는 경과규정 즉 이른바 ‘윈드다운(Wind-down)’을 두어 이미 이란과 거래한 기업들에게 사업종료 및 철수까지 180일간의 유예기간을 부여합니다. 따라서 만약 트럼프가 갱신을 거부할 경우 180일은 이란과 재협상의 시한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원래 ‘스냅백’과 ‘윈드다운’은 JCPOA상의 분쟁해결절차(JCPOA ,article 36)에 따른 것 P5+1으로 구성된 ‘JCPOA 위원회(JCPOA joint commission)가 이란의 핵협정 위반을 대비하여 규정한 것입니다. 즉 미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경우를 예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란은 이미 위원회에 11건의 비공식제소를 한 바 있는데 별다른 실효성은 아직 없어보입니다. 따라서 트럼프가 갱신을 거부할 때, 이런 규정들을 실제로 준수할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트럼프가 이란 핵협정 파기 움직임을 실제로 보인 것은 작년 10월 핵협정 ‘인증(Certification)’을 처음으로 거부했을 때입니다.

당시 모게리니 EU외교담당은 ‘인증거부’가 미 국내법적 이슈로써 핵협정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주장했는데 그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핵협정을 진행하는 동안 공화당이 장악한 미 의회의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당시 의회는 이란에 대한 추가제재법안을 상정하며 협상 타결을 막았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법안서명 거부권 행사등을 거론하며 의회와 대립했지만 한편에서는 공화당 보수파를 달래줄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가 통과시킨 ‘이란 핵협정 검토법(Iran Nuclear Agreement Review Act)’에 동의하게 됩니다. 법안 내용은 미 행정부가 90일마다 이란의 핵협정 준수여부를 검증하여 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정부가 ’90일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미 의회는 행정부가 핵협정 인증을 포기 또는 거부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란제재에 착수하여 제재부과 여부를 60일내에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90일 보고서’는 IAEA의 이란핵사찰을 바탕으로 작성되는 매우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문서인데, 바로 이 ’90일 보고서’가 언론에서 흔히 언급되는 핵협정 ‘인증’으로 원래 취지는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집권하면서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트럼프가 인증을 거부하고 의회에 이란제재를 요구하면서 도리어 정치적 부담이 의회에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작년 10월 트럼프의 인증거부 이후, 여러 건의 이란제재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었으나 복잡한 당파적 이해관계로 사실상 통과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합니다. 양원제 국가인 미국은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상,하원 표결과 대통령 서명이라는 쉽지 않은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인증거부로 인한 문제는 미의회의 난맥상으로 소강상태에 빠진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이는 엄밀히 말하면 핵협정 위반은 아닙니다. 다만 의회가 제재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핵협정 존속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의미에 그칩니다.

하지만 제재면제권은 다릅니다. 제재면제 갱신은 핵협정의 핵심사항으로 갱신거부시 핵협정존속에 직접적 영향을 주게됩니다. 따라서 이란과 P5+1을 포함한 핵협정 당사국들은 다가오는 5월12일 트럼프가 제재면제를 전면적으로 거부할지, 아니면 조건부 갱신하거나 거부할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