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례신문 기사, 8/13]
주한 이란 대사 “호르무즈 안전은 이란의 책임, 한국은 파병 이유 없다.”

미국이 지난해 5월 ‘이란 핵 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후 페르시아만 주변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경제제재를 재개하고 항공모함 전단과 B-52 전략폭격기 등 군사력을 파견해 이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호르무즈해협 주변에선 두차례에 걸쳐 몇몇 유조선이 피격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너비 30~40㎞인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량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이다. 국내 원유 수송량도 80%가 통과하고 있어, 우리 경제에도 핵심적 이해관계가 걸린 곳이다. 미국은 ‘다국적 호위 연합체’를 구성해 이곳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한국의 파병을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55) 주한이란대사는 8일 “우리 주변 지역의 안보는 우리가 지킨다는 게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생각이다. 외부세력이 개입할 이유가 없으니, 어떤 나라의 파병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갈등의 배경인 이란의 핵무장 의혹에 대해선 “이란은 2015년 미국·유럽국가들과 맺은 핵 합의의 틀 안에 남아 있다.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제재를 취소하면 소통하고 협상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서울 용산구 장문로 45 이란대사관에서 2시간 남짓 이란대사관 직원의 통역으로 진행됐다.

호르무즈해협에서 이란미국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있다. 전쟁 가능성이 있나?

“우리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종교지도자(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전쟁은 안 일어날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란은 충돌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도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물리적 충돌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은 한번 일어나면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누구도 그 지역에선 전쟁이나 충돌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외부세력 중에는 페르시아만 주변의 불안정을 원하는 세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래야 자신들이 그 지역에 있어야 하는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경제제재로 원유 수출이 중단되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있다 경고한 적이 있다. 실제 봉쇄할 계획이 있나?

“이란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해협 주변 국가로서 이곳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해협을 봉쇄한 적이 없다. 1980년대 이라크와 8년 전쟁 때도 봉쇄를 안 했다.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모든 주변 국가들이 자유롭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한국에 호르무즈 파병을 요청했는데, 이에 대한 이란의 입장은?

“다시 말하지만 이란은 우리 주변 지역에서 위기를 고조시킬 의도가 전혀 없다. 그래서 어떤 국가의 파병도 반대한다. 한국도 파병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 지역의 안보는 이란과 주변 국가들이 지키는 것이다.”

그래도 한국이 파병하게 되면?

“우리는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 관계는 10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의 어떤 학자가 고대 페르시아의 서사시 ‘쿠쉬나메’를 번역했는데, 그 서사시에 보면 페르시아의 왕자가 한반도까지 와서 신라의 공주와 결혼한 얘기가 나온다. 한-이란 관계는 그때부터 우호적, 친선 관계를 유지해왔다. 1970년대 ‘오일 쇼크’가 있을 때는 이란이 한국을 도와줬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는 한국인 엔지니어들이 이란을 떠나지 않고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했다. 그때 14명이 숨졌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있다. 서울의 테헤란로는 한-이란 사이가 얼마나 우호적인 관계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호르무즈해협의 위기는 미국 정부가 ‘이란 포비아’(이란 혐오)를 조장해 이란을 위협하고 위축시키려 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미국은 이란과의 위기와 갈등을 부각하기 위해 여러 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이런 파병은 용납할 수 없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이 파병에 반대하고 있고, 아시아에서도 파병한다는 얘기가 없다. 한국도 파병하지 않길 바란다.”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의 배경에는 핵 문제가 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시절인 2015년 7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독일이 포함된 6개국(P5+1)을 한편으로 하고, 이란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핵 합의’가 타결됐다. 여기엔 이란은 원심분리기를 2만개에서 5천개로 줄이고 농축우라늄 보유량도 98% 감축하는 등 핵무장 의혹을 불식할 조처를 취하고, 대신 미국 등 6개국은 경제제재를 철회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이 핵 합의에 ‘핵 능력 제한 조항에 일몰 규정이 있어 이란의 핵무장을 막는 데 불충분하고 탄도미사일에 대한 규제도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합의 파기에 대한 이란의 입장은 무엇인가?

“2015년 핵 합의는 12년 동안 여러 나라가 참여해 협상한 끝에 체결된 합의다. 이 핵 합의는 세계 모든 나라가 지지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핵 합의에서 탈퇴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과거 약속은 지켜야 한다. 당시 핵 합의에 서명한 나머지 5개국은 현재 협상 테이블에 남아 있는데 미국만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이다. 그러곤 이란을 제재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도 이란과 교역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건 불공평하다. 이란 핵 합의는 국제사회도 계속 지지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길 바란다. 이미 합의된 틀에서 다시 소통했으면 좋겠다.”

미국이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면 합의 내용을 수정하는 것도 허용할 있나?

“핵 협상의 틀은 바꿀 수 없다. 실행 방안 등은 협상할 수 있지만 전체 틀은 유지돼야 한다. 핵 합의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이란이 핵무기를 만들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2015년 핵 합의에 다 들어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을 사찰하고 14차례 보고서를 냈는데, 그 내용은 모두 ‘이란이 핵 합의를 잘 준수하고 있고 위반 사항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노 유키야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지난 7월 사망)도 이란 핵의 군사적 전용 가능성(PMD)에 대해 근거 없다고 보고한 바 있다. 또 이란 최고지도자는 핵무기는 금지된 것이라는 파트와(이슬람 율법 해석)를 발표했다.”

이란은 미국의 핵 합의 파기 1년 뒤 핵 합의 이행 일부 중단을 선언했다. 지난 5월엔 국내 저농축우라늄 국내 비축량(300㎏)과 중수 비축량(130t) 규정을 지키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두달 뒤엔 우라늄 농축농도 제한(3.67%)도 지키지 않겠다고 했다.

이란이 합의 이행을 일부 중단한 이유는 뭔가?

“이란은 미국의 핵 합의 탈퇴 이후에도 1년 동안 합의 내용을 지켰다. 이란은 책임을 다했지만 미국의 제재로 원유도 못 팔고, 의료기기나 의약품도 수입을 못 하고 있다. 우리가 계속 교역을 못 하게 된다면 앞으로 2~3개월에 한번씩 핵 합의 이행을 추가로 중단할 것이다. 2015년 핵 합의를 유지하려면 핵 협상의 또 다른 당사자인 유럽 쪽이라도 나서서 우리가 교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될 것인지는 유럽과의 협상 결과에 달렸다.”

만약 끝까지 안되면 어떻게 하나?

“희망을 가지고 있고, 끝까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쪽이 제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것에 불만이다. 경제제재로 우리 국민이 힘든 상황이다. 유럽이 핵 합의에 책임이 있는데, 그것을 지켜내는 문제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를 일방적으로 배경엔 이란의 체제 전복, 레짐 체인지 의도가 있는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레짐 체인지는 미국 정부도 사실이 아니라고 얘기했다. 트럼프 주변의 강경파가 이란 국민이 레짐 체인지를 원한다고 계속 얘기해서 트럼프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레짐 체인지가 옳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2015 합의로 복귀하긴 어려울 것이다.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면 2015 합의로 돌아갈 있다고 보나?

“조 바이든이나 버니 샌더스 같은 주요 민주당 후보자들은 ‘트럼프의 핵 합의 파기는 실수’라고 한다. 이들이 승리하면 핵 합의로 다시 돌아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우리는 미국이 제재를 중단하면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

미국의 제재로 이란 경제는 다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란의 리알화 가치는 제재 이전인 1년여 전과 비교해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물가는 40%나 폭등했다는 보도도 나온 적이 있다. 올해 이란의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란의 일반 국민 생활은 어떤가?

“지난해 제재가 재개됐을 때 처음이 힘들었다. 리알화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지금은 조금 적응이 됐다. 인플레이션도 안정되고 있고, 리알화 가치도 처음보다 30% 올랐다. 그래도 일반 국민이 미국 제재의 직격탄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 기업들도 많이 철수하고, 이란 교역도 줄었다. 우리 국민과 기업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한국과 미국의 특수관계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한국과 이란의 우호 관계는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제재로 한국의 은행에는 몇조원의 원화결제 대금이 묶여 있는 것으로 안다. 이란은 이 대금을 이용해 비제재 품목을 계속 수입하고 싶다. 이란 국민은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제품을 많이 사용한다. 한국이 이란 시장을 잃지 않길 바란다. 힘들 때 손을 잡아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힘든 시기에 한국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한반도에는 북핵 문제가 있다. 조만간 협상이 진행될 예정인데, 어떻게 보나?

“이란의 정책은 전세계가 비핵화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했을 때 로하니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게 우리의 원칙이다. 협상에는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북·미가 신뢰감을 바탕으로 협상을 성공적으로 하길 기원한다.”

이란은 북한하고도 가깝다. 이란 ·미사일 커넥션 얘기도 있다.

“이란과 북한의 관계는 자연스럽고 보통의 관계다. 북한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 우리를 돕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과 핵 커넥션은 없다. 핵무장은 우리 정책이 아니다. 우리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평화적 핵 활동을 한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다르다. 미사일도 우리가 개발한 것이다. 북한과 관계가 없다.”

 

* 8월 13일 한겨례신문에 게재된 박병수 논설위원과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터리 주한 이란이슬람공화국 대사간 인터뷰 기사를 인용하였습니다.
원문참조 :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905631.html